여행 및 나들이

낙산사(8월6일)

예실촌 2011. 8. 8. 19:02

 낙산사는 관세음보살님의 진상이 항상 머무르며 설법을 하고 계신다는 보타낙가산의 "낙산"에서 유래 되었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과 동해에서 해돋이가 가장 아름다운곳으로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명승 제27호.

사작 제 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통보전, 칠층석탑, 건칠관음보살좌상,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증사리탑, 홍예문, 홍련암, 해수관음상, 모든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의상대사의 행적에 관한자료가 있는 의상기념관등 많은 성보 문화재를 갖추고 있다.

 

 

 홍예문(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33호)

1467년(세조13)에 축조되었다.

당시 강원도에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각 고을에서 석재 하나씩 내어 쌓았다고 전한다.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제362호)

원통보전에 봉안된 불상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불상이다.2003년에 보물로 지정 되었다.

 칠층석탑(보물제499호)

조선시대 석탑으로 천룡팔부로 부터 받은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의상대(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때 산세를 살핀곳이며, 좌선수행처라고 한다.

 

 

 홍련암(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6호)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하기에 앞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장소이며,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의상 스님 진영과 창건실화

낙산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중국 당나라의 지엄문하에서 화엄학을 공부한 의상대사가 신라로 돌아온 해는 670년(문무왕10)이었다.

대비진신(관음보살)이 해변의 굴속에 계시기 때문에 낙산(洛山)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대개 서역에 보타낙가산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소백화(小白樺)라고 하고 백의대사의 진신이 머무는곳이기에 이를 빌려서 이름 지은것이다. 간절하게 기도한 뒤 7일만에

자신이 앉았던 좌구를 물위에 띄웠더니 천룡팔부의 시종이 그를 굴속으로 인도하였다.

들어가서 참례한 후 공중에서 떨어진 수정염주 한벌과 동해용이 여의보주 한벌을 주어받아서 물러 나왔다.

다시 7일동안 수행하여 드디어 관음보살의 진용을 뵈었는데, 말씀하시길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대나무 한쌍이 돋아날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것이 마땅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지금의 원통보전 자리다.

대사가 그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 이에 금당을 짓고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니,

그 원만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질이 엄연히 하늘에서 난듯 했다.

대나무는 곧바로 없어졌으므로 바로 이곳에 관음보살께서 지내심을 알았다.

이로 인하여 그 절을 낙산사라 하였고, 의상대사는 받은 구슬을 성전에 모셔두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