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3구간
만덕고개~금정산~지경고개
만덕고개~금정산~지경고개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제3구간 산행!
사당에서 오전6시40분에 출발한 '기분좋은 산행'산악회버스는
선산휴게소에서 정차를한 후 들머리인 만덕고개에 12시10분경 도착을 합니다.
수요일 동네산인 광명4산 도.구.가.서(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 산행 중 서독산을 내려서는 등로에서 삐긋하여
엉치뼈를 다쳐 낙동제3구간을 포기하려했는데, 금요일 물리치료 후 약을 먹으니 조금 나아지는듯하여 예정대로 산행을 하기로합니다.
혹시나하여 산행전 약을 먹고 아쉽지만 A코스를 포기하고 B코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산행코스 : 동문주차장~동문~제3망루~나비암~제4망루~의상봉(641m)~원효봉(687m)~북문~금샘~고당봉(801m)~
갑오봉(720m)~장군봉(727m)~계명봉(601m)~지경고개(녹동마을)
산행거리는 약12.2km이고, 산행시간은 4시간40분소요되었답니다.
만덕고개(萬德嶺)는
부산광역시북구 만덕동에 소재한 고개로 금정산맥의 북동부 상계봉과 백양산 사이의 안부에 해당됩니다.
예부터 구포 방면과 동래 방면 사이를 잇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며,
이 고개를 넘으려면 산 아래 동네에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넘어야 했을 정도로 산적 떼들이 자주 나타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답니다.
지명은 만덕사라는 절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나, 본래 이 고개는 기비현(其比峴)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만덕 고개는 부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금정 산맥에 자리한 대표적인 고개로,
동쪽의 동래 지역과 서쪽의 구포, 낙동강 건너의 대저와 김해 지역을 연결하던 고도 300m가량의 고갯길입니다.
지명과 관련된 전설로는 임진왜란 때에 금정산 기슭인 이곳에 10,000여 명의 피난민이 와서 모두 화를 면했다고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전합니다.
금정산(金井山, 姑堂峰 801.5m)은
금정산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호국사찰(범어사)과 국내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습니다.
금정산은 해발 801.5m의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과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2m)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류(리)봉, 동제봉 등의
준봉을 일구어 놓고 있답니다.
산세는 그리 크지 않으나 곳곳에 울창한 숲과 골마다 맑은 물이 항상 샘솟고 화강암의 풍화가 격렬하여 기암절벽이 절묘하여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이 되었답니다.
북쪽으로 산정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이 있는데,
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으며 한국 옛 산성 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또한, 금정산에는 약수터가 14군데나 있어 등산객의 목을 축여주고 일부 구민의 식수로 쓰여지고 있으며
2,300여종류의 나무와 날짐승, 길짐승을 포함 6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식하는 동, 식물의 낙원이자
동래온천, 금강공원, 범어사, 국청사, 금정산성과 산성마을 등 명소를 두루 지니고 있답니다.
지경고개(地境嶺)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와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금정산과 계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동쪽에 위치하며 고개를 따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지경'은 땅의 경계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
원래 영남대로의 고개로 사배고개라고 불렀다가 1961년 고시로 지경고개로 지명이 변경되었답니다.
『양산의 문화』에 과거 이곳에서 쇠가 났고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며,
사배 지명은 '새벽'의 이두식 표기이며 양산의 동쪽에 위치하여 일찍 새벽이 온다는 뜻이라는 설이 있답니다.
의상봉에서 바라본 제4망루와 진행했던 동문방향을...
만덕고개
만덕 고개는 부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금정 산맥에 자리한 대표적인 고개로,
동쪽의 동래 지역과 서쪽의 구포, 낙동강 건너의 대저와 김해 지역을 연결하던 고도 300m가량의 고갯길입니다.
북쪽의 금정산(金井山)과 남쪽의 백양산(白楊山)을 잇는 능선이 만덕 고개에 이르러 고도가 낮아지고
말의 허리 부분같이 움푹 꺼지면서 낮아진 안부(鞍部)를 형성합니다.
만덕고개에서 A코스 낙동정맥 제3구간 산행 산벗님들을 내려주고, B코스 동문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동문주차장에서 동문으로 향합니다.
만덕터널 만덕고개까지 곡예운전으로 베스트드라이버 '금강님' 덕분에 A코스는 약2km를 날로 진행할 수 있었고,
B코스 동문주차장가지 약8.2km를 40여분 소요되어 도착을 합니다.
12시50분경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으니...ㅠㅠ
금정산 등안내도
삼삼하게 받쳐준 쾌청한 날씨에 그런대로 여유있는 산행과 펼쳐지는 풍경의 멋을 그런대로 마음껏 담아보고픈 마음과
금샘과 장군봉의 아름다운 매력에 이끌려 B코스를 택하게 됩니다.
동문으로 이어지는 숲길입니다.
개량 동백꽃인듯?
동문입구 못미쳐 세워져 있는 생명살림여장군과 생명평화대장군의 목장승...
동문을 들어서 우측 고당봉5.2km, 북문4.2km방향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금정산성 동문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주민들이 가장 근접히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금정산성 동문은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이라는 설명판입니다.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사적제21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난 후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5km 성벽높이는 1.5~3m에 이르는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입니다.,
동래 온천장의 북서쪽에서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 정상까지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4km 성벽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금정산에는 숙종 29년(1703년)에 왜구의 재침을 막기 위해
산능선을 따라 사방에 4개의 성문을 가진 둘레 17㎞의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이 축조되었고
이곳에 오르면 지난날 우리 민족이 이민족의 침략을 저지하고자 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동문에서 제3망루로 이어지는 등로엔 소나무 숲으로 걷기에도 편하였으며,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 좌측으로 군데 군데 평상과 나무의자가 마련 되어있어 휴식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인듯 하였답니다.
제3망루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제3 망루입니다.
금정산성 제3 망루(金井山城第三望樓)는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에서 북쪽으로 약 1㎞ 지점, 해발 550m의 암반이 솟아오른 절벽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답니다. 금정산성 제3 망루의 출입구 서쪽 10여 m 앞의 바위 면에 음각으로 ‘번위돈(蕃威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돈대(墩臺)[성안의 높직한 평지 위에 높게 쌓아 올린 포대(砲臺)]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금정산성 제3 망루는 금정산의 유명한 나비 바위와 부채 바위 사이의
천구만별(千龜萬鼈)(1,000개의 거북과 1만 개의 자라 형상을 한 바위가 널려 있다는 의미)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찬탄을 자아내고 있는데, 등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오늘도 그냥 패스하게 되었습니다...ㅠㅠ
건너편은 남문을 지나 파리봉으로 이어지는 산마루금입니다.
제4망루와 의상봉및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봅니다.
쾌청한 날씨에 멋스럽게 펼쳐지는 금정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감상하며 여유있게 진행을 이어갑니다.
룰루랄라 걷기좋은 오솔길 분위기였네요.
제4망루 의상봉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멋스러운 풍경을 담아봅니다.
부채바위상단
수직의 암괴들이 마치 부채와 같은 형상으로 펼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부채 바위는 금정산성의 동쪽 사면에 날카롭게 솟아있는 부채를 펴놓은 것 같은 수직의 암벽입니다.
금정산에는 심층 풍화(지표 깊은 곳의 기반암이 풍화되는 것)를 받은
화강암이 차별 침식(지표면의 단단한 정도가 달라서 서로 다르게 침식되는 것)의 결과 지표면에 드러나 연한 부분은
강우에 의한 침식으로 제거되고, 경암 부분이 잔존하여 수직으로 뾰족하게 솟은 지형이 눈에 띈답니다.
이러한 지형은 금정산의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금정산성의 동문과 북문 사이의 성곽과 그 외측의 산지 사면에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특이한 형상으로
지표에 드러난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답니다.
이러한 암석 무리 중 하나가 부채 바위입니다.
부채 바위의 인근에는 나비 바위와 무명암이 있습니다.
이 화강암의 풍화 잔존체인 입석(立石)들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금정산의 위용을 돋보이게 해준답니다.
멋스러운 풍광을 담으며 여유롭게 진행을 합니다.
산성고개 너머로 상계봉, 파리봉을 바라봅니다.
금정산의 멋을 마음껏 담아보고...
금정산 토어(Tor)
마치 우뚝솟은 바위 봉우리처럼 이런 암릉군은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풍화잔류암과 지형의 하나로 토르(Tor)라고 합니다.
토어는 기반암의 일부가 탑상이나 괴상으로
지표면으로부터 수m~수 십m 돌출된 지형으로 국부적인 암질의 차이에 의한 차별풍화로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미 지형입니다.
이러한 토어는 절리가 발달하고 풍화가 진전되기 쉬운 화강암지역에서 잘 나타나며,
금정산 역시 산정 및 능선에서 다수의 토어가 관찰됩니다.
진행했던 뒤를 돌아봅니다.
멋스러운 풍광을 계속 담아봅니다.
부채바위 암군들...
부채 바위는 금정산성의 동문과 북문 사이의 능선을 따라 산지 비탈면에 분포하는 거대한 입석군과 함께 자리하고 있어
등산객의 눈길을 끈답니다.
또한 부채 바위의 수직 암벽은 모험을 즐기는 암벽 등반가들의 훈련장으로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답니다.
동자바위...
나비바위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에 있는 바위로
수직의 암괴들의 쌓인 형상이 마치 나비같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명칭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암벽 등반가들 사이에서 불려오던 명칭이 고착화된 것입니다.
나비 바위는 금정산 동쪽 사면에 날카롭게 솟아 있는 입석군 중 일부의 이름입니다.
바위는 금정산성 동문과 북문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성곽의 일부처럼 자리하고 있답니다.
이러한 지형은 금정산의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금정산성의 동문과 북문 사이의 성곽과 그 외측의 산지 사면에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특이한 형상으로
지표에 드러난 기암괴석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금정산성 동쪽 사면에 더욱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암석 무리 중 하나가 나비 바위입니다.
나비 바위 인근에는 부채 바위와 무명암이 있습니다.
이 화강암의 풍화 잔존체인 입석들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금정산의 위용을 돋보이게 해준답니다.
나비바위 부근에서 선두에 잡히고 말았네요.ㅎㅎ
시원스런 조망이 압권이었습니다.
아래는 부산대학교...
진행했던 뒤를 돌아봅니다.
제4망루로 이어지는 등로입니다.
금정산 산지의 형상은 최고봉인 해발고도 801.5m의 고당봉을 기점으로 북동-남동-남서로 이어지는
초승달 모양의 산능을 이루고 있습니다.
금정산의 중앙부는 전형적인 침식분지를 나타내며, 북동-남동-남서 사면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룬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삭박작용을 받아 산정과 산정 사이를 잇는 산능은 예리한 톱니바퀴형의 기반암이 노출하여
마치 성곽처럼 보인답니다.
제4망루와 좌측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제4망루와 의상봉...
제4망루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제4 망루
금정산성 제4 망루(金井山城第四望樓)는
중성(中城)이 시작되는 곳으로, 금정산성 북문(金井山城北門) 남쪽 주 능선 해발 610m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금정산성 제4 망루가 있는 곳은 용호봉 (의상봉) 남쪽으로 외성(外城)의 동쪽 성곽과 중성의 동쪽 끝이 만나는 삼각점이기도 합니다.
동쪽으로는 회동 수원지가 보이고, 금정구 노포동과 두구동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구포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에 이르는 성벽이 계속되고 있답니다.
북쪽은 고당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상봉
의상봉(620m)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 봉우리로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활을 할수있는 봉우리이며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라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고 하자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이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하였다 하구요.
위쪽이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龍峰)이 되었다 합니다.
이 두봉우리를 합쳐 용호봉(龍虎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금정구 그리고 회동수원지를 담아봅니다.
의상봉에서 진행했던 제4망루와 금정산성을 담아보고...
좌측 고당봉과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산성길을 담아봅니다.
멋스러운 풍광에 계속 담아봅니다.
회동수원지와 금정구및 부산대학교가 보입니다.
금정산 토어(Tor)
마치 우뚝솟은 바위 봉우리처럼 이런 암릉군은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풍화잔류암과 지형의 하나로 토어(Tor)라고 합니다.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장군봉, 원효봉, 상학봉 등 고도 500~800m의 산정과 이들 산정 사이에 이어지는 산능에는
대부분 산성이 축조되어 있답니다.
이들 산정 및 산능에는 백악기 불국사화강암류의 크고 작은 기반암의 노출로 특이한 암괴지형인 토어(tor)가 다수 관찰됩니다.
고당봉과 원효봉을 바라보고...
원효봉과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성벽의 아름다움 입니다.
의상봉(620m)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 봉우리로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활을 할수있는 봉우리이며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라는 설명...
의상봉을 내려서 담아본 무명바위의 모습...
의상봉의 정상인 호봉 모습 입니다.
회동수원지를 다시 담아봅니다.
회동수원지 뒤로는 몇년전 일출산행으로 찾았던 기장 달음산입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금정산 고당봉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쌓았답니다.
어느날 고당봉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원효봉 부근에서 수련을 하였답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에는 높은 너럭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틈서리에는 어른 키만한 땅딸보 소나무가 박혀 있다는 설명...
이 바위 위에서 부동자세로 몇십 시간 서 있는 훈련을 하다가 선채로 소변을 싸 버렸는데
그 것을 본 낭도가 그 자리에 아기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 놓았다합니다. 이소나무가 1천년의 유구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지금도 그푸르름을 뽐내고 있다는데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답니다.
김유신솔바위 설명판 뒤 의상봉정상인 호봉과 무명바위의 모습...
원효봉으로 이어지고...
원효봉에 도착...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元曉峰, 687m)이라 불렀답니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는 봉우리입니다.
원효봉 인증...
원효봉을 내려서 북문으로 향합니다.
멀리 진행하여야할 갑오봉과 장군봉이 보입니다.
북문과 고당봉 및 금샘이 보입니다.
동문에서 3.8km진행하였고, 고당봉까지 1km남았습니다.
금정산 북문
원효봉을 지나 고도가 조금은 뚝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이런 천혜의 지형 덕분에 북문근처는 초원과 습지가 형성되어, 예전에는 수많은 희귀식물이 분포했다고 합니다.
북문의 성곽모습...
금정산성 북문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는
잘록한 안부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금정산성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는 설명입니다.
갈맷길 안내도
갈맷길은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부산광역시 등이 시민 공모를 통해 확정한 이름입니다.
‘갈매’는 순수 우리말로 ‘깊은 바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부산광역시가 2009년부터 부산의 산과 강, 바닷가(해안)에 집중적으로 조성한 갈맷길은
슬로우 라이프를 실현하고 생태 도시로 나아가는 기초 인프라가 되고 있답니다.
고당봉과 금샘을 바라봅니다.
북문습지는 금정산성의 북문일대에 분포하는 면적 약 3,000㎡, 길이 100m, 너비 80m의 장방형의 침식평탄면에 형성된 자연습지입니다. 흑색의 유기물층을 하부로 하는 이 평탄면은 실트질 점토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둥근 모양을 한 화강암의 암괴가 20~30㎝ 높이로 드러나 있답니다.
본래 각종 습지식물이 서식하는 천연습지였으나 인근에 습지복원을 위한 인공연못 조성 후 습지의 대부분이 초지화
또는 육지화 되었답니다.
좌측방향은 산성마을(미륵사)방향이고 직진하면 금샘 고당봉방향이며 우측 북문을 통과하면 범어사 방향입니다.
금정산성(사적 제 215호)은 해발 801m인 금정산 꼭대기에서 동남쪽, 서남쪽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되었답니다.
둘레 18,845m로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산성입니다.
숙종 대인 1701~1703년 사이에 쌓은 것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1707년 동래 부사 한배하가 성이 너무 넓어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고 장대, 군기고 등의 시설을 보완하였답니다.
1806년 동래 부사 오한원이 성을 다시 수리하고 동문을 새로 쌓았으며,
서문, 남문, 북문에 문루(성문의 바깥쪽 위에 지은 다락집)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답니다.
산성은 임진왜란 후 당시 경상감사의 진언으로 1703년(숙종 29)에 축성되었고, 그 뒤 다시 증축되었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1972년부터 2년 간에 걸쳐 동·서·남 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하면서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인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이 되었답니다.
북문을 조금 지나 만나게 되는 세심정약수터입니다.
물을 마시고 있는 산객이 있어 한참을 기다려 사진을 담게 됩니다.
미륵사로 이어지는 등로를 지나 금샘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미륵사갈림길...
금샘에 한무더기의 산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네요.
금샘을 당겨봅니다.
고당봉 정상도 바라보고...
고당봉, 금샘으로 이어지는 등로...
우측 금샘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금샘에 도착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 고당봉 근처에 있는 샘
금정산성 북문에서 고당봉 쪽으로 300 여m쯤 오르다보면 고당샘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100여m쯤 내려가면 바위군 맨 끝에 우뚝 솟은 바위 정수리에 언제나 금빛 물이 고여 있다는 금샘이 있습니다.
금정산 금샘[金井]은 금정산(金井山) 고당봉(姑堂峰)(801.5m) 동남쪽 8부 능선에 돌출한 바위 무더기 중 남쪽에 솟아 있으며,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괴어 있는 바위 정수리를 말합니다.
금정산 금샘은 범어 삼기(梵魚三奇)로 불리는 금정산 비경 가운데 하나로, 암상금정(岩上金井)이라고도 합니다.
금샘명칭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산천조에 “금정산 산마루에 3장(丈)(약 9.09m)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고 둘레가 10여 자(尺)(약 3.03m)이며, 깊이는 7치(약 0.21m)쯤 되는데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황금빛을 띤다”라고 유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책의 기록에 따르면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이 황금색 우물 속에서 놀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금빛 우물이 있는 산’, 즉 금정산(金井山)이라 산 이름을 짓고,
그로 인하여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천(梵天)의 고기’ 즉 범어사(梵魚寺)라 절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도 같은 기록이 전합니다.
금정산 금샘은 2009년 11월 3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청 향토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9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승격 지정되었답니다.
좌측 갑오봉, 우측 계명봉입니다.
금샘에서...
『범어사 창건 사적(梵魚寺創建事蹟)』에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문무왕과 함께 금샘 아래에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칠일 밤낮을 일심(一心)으로 독경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그 내력이 삼국 시대 말 이전부터임을 짐작할 수 있답니다.
예로부터 금정산 금샘에 물이 마르면 큰 재앙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금정산이라는 이름도 이 우물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샘에 관하여 '세종실록지리지'과 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정산 정상 돌 위에 샘이 있는데 항상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물빛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전한답니다.
현재 샘의 크기는 긴 남북 방향이 147㎝, 짧은 동서 방향이 125㎝이며 깊이도 51㎝에 이른답니다.
이름과는 달리 물이 솟아나는 게 아니라 빗물이 고인 것인데,
안개 등의 영향으로 비가 오지 않아도 웬만해서는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샘 주위에는 낙동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낮에 햇빛의 열기로 데워지고,
데워진 바위가 밤이 되면 주변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으로 샘물이 차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10월의 해 질 무렵에 금샘을 보면 물 안에 물고기 형상의 홈이 파여 있어 석양과 단풍빛이 반사되어 금빛 물로 변화하고,
바람에 파장이 일렁이면 마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노니는 것 같이 보인다합니다.
금샘의 물은 살짝 얼어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금샘을 담고 감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다행히 사람이 없어 오래도록 감상하며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금샘을 담아봅니다.
고당봉을 당겨 담아보고...
금샘을 내려서 고당봉으로 향합니다.
고당봉까지는 약500m입니다.
고당봉으로 오르는 데크계단...
고당봉으로 오르며 낙동강을 담아봅니다.
파리봉, 상계봉 방향을 바라봅니다.
고당봉 인증...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백두 대간이 동해를 따라 흘러와 세워 놓은 마지막 영봉으로,
봉우리에 서면 멀리 광안 대교를 비롯한 바다와 부산 시가지 및 낙동강, 김해 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정상석이 바뀌었네요.낙뢰로 인하여 정상석을 2016년10월에 교체하였다합니다.
2014년 7월5일에 찾았던 금정산 고당봉 정상석입니다.
진행하여야할 갑오봉과 장군봉 및 계명봉을 바라봅니다.
고모당(姑母堂)
「금정산 고당 할미와 고모제」는
고모당(姑母堂)이라는 당산과 고당 할미가 된 밀양 박씨의 내력에 관한 당산신 전설입니다.
고당 할미를 모신 고모당은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모당의 고모제는 범어사의 모든 스님이 참석하여 1년에 두 번씩 지내는데, 음력 1월 15일과 5월 5일에 올린답니다.
스님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범어사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코스로 고모당까지 걸어오는데,
이것은 범어사의 지표를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신에게 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은 울산 지방의 왜군과 합류하러 가는 길에 범어사를 불태웠다합니다.
당시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해 있던 밀양 박씨는 절을 재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마을과 절을 오가며 애를 써서 주민들에게 시주 받은 것으로 스님들을 수발하고 절의 재건을 도왔다합니다.
밀양 박씨는 범어사의 살림을 맡은 화주 보살이 되어 절의 부흥을 위해 하루하루 애를 쓰다가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두고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火葬)을 하여 고당봉 아래에 사당을 짓고 고모제를 지내 주면,
자신은 그곳에서 죽어서라도 범어사를 지키는데 힘을 쓰겠다고 했다합니다.
주지 스님은 그녀의 뜻대로 장사를 지냈고, 그 후로 고모당을 지어 일 년에 두 번씩 고모제를 지내 주었답니다.
진행했던 방향을 뒤돌아 담아보고...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을 내려서 장군봉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진행하여야할 능선을 바라봅니다.
금정산 10여개 봉 중 최고봉인 고당봉을 내려서 장군봉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갑니니다.
뒤돌아 고당봉을 담아봅니다.
고당봉을 다시 올려다 담아보고...
양산 시가지와 낙동강...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
옹달샘약수터...
지난번처럼 옹달샘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셔봅니다.
장군봉 옹달샘약수터에서 갑오봉까지 제법 가파른 오름으로 진행을 합니다.
장군봉으로 진행하여 장군봉 밟고 다시 이곳으로 빽하게 됩니다.
장군봉과 장군평전을 바라봅니다.
갑오봉 정상입니다.
장군봉에 도착하여 장군평전을 담아보고...
고당봉을 바라봅니다.
장군봉표지석...
장군봉 인증합니다.
양산시내와 낙동강을 바라보고, 무척산 방향을 가늠해봅니다.
730봉, 727봉을 바라보며...
장군봉에서...
고당봉 방향을 다시 담아보고...
경부고속도로 우측 양산 천성산을 바라봅니다.
금정산을 구성하고 있는 지질은 경상계 퇴적암층과 이를 관입 또는 분출한 화산암류,
그 후 이들 암석에 관입한 불국사화강암류 및 마산암류로 되어 있답니다.
신라통의 이천리층은 금정산에 분포하는 유일한 퇴적암으로서 고당봉의 북동쪽에 있는 장군봉과 범어사의 동남쪽 계명봉 일대의
산정을 이루고 있답니다.
장군평전에서...
햇빛받은 억새의 물결을 담아봅니다.
고당봉과 진행했던 금정산의 멋스러운 능선을 담아보고...
계명봉 갈림길...
계명봉까지 500m빡세게 진향하여합야 합니다.
계명산(鷄鳴山,601.5m)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沙松里)에 있는 산입니다.
금정산(金井山)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계명암과 봉수대가 있답니다.
닭이 운다는 뜻으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한밤에 닭울음을 듣고 붙인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이에 이곳에 세운 절을 계명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계명봉이라 불렀답니다.
한편으로는 새벽에 기도하는 납자(衲子)들이 닭울음을 듣고 새벽을 알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새로운 우물(新井)이라는 뜻의 '새울이' 혹은 '새울이 뫼'라고도 부르며,
새로울 신(新)의 음이 새(鳥) 혹은 닭(鷄)과 비슷하다고하여 '새'를 '계'로 옮겼고,
우물(井)의 음이 '울다'와 비슷하다고하여 울 명(鳴)을 차용하였다합니다.
「금정산 계명봉」은
계명암의 유래 전설이자 계명봉의 유래 전설이며,
투구 형상과 주민 안전, 장수천의 맥을 자른 왜국의 침략, 계명봉(닭)앞에서 움츠러든 대마도(지네),
암탉 바위를 밀어 버려 범어사의 사세가 기울었다는 등의 풍수 전설이기도 합니다.
옛날 의상 대사가 금정산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밤중에 느닷없이 닭 울음소리를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곳에 암자를 지어 계명암이라 하고, 그 봉우리를 계명봉이라 이름을 붙였답니다.
그 후 이 암자에서는 새벽 예불을 드리는 시간이면 닭이 꼭 때맞춰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범어사를 바라봅니다.
범어사 뒤좌측으로는 무명암과 의상봉 우측 고당봉이 보입니다.
범어사
금정산 정상 동쪽 기슭에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가 있습니다.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를 자랑하고,
계명암, 내원암, 청련암, 금강암 등 여러 부속암자를 주변에 거느리고 있습니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서 의상이 창건하고 그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다는
범어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현감(玄鑑) 등이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어
중창한 이래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답니다.
범어사는 678년(문무왕 18)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경상남도의 통도사·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힌답니다.
20여 동의 가람과 신라시대의 석탑인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은 금정산과 더불어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습니다.
절 부근에는 계명암을 비롯한 여섯 암자가 있답니다.
범어사 우측으로 보이는 내원암입니다.
지경고개 날머리에 있는 낙동정맥 부산구간 종합안내도
계명봉에서 내려서는 하산길은 무척 가파르기에 안전에 유의하여 내려서야합니다.
낙엽쌓인 상당히 가파른 경사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임도길을 만나게 되고 우측 자두농원 방향으로 진행하면
날머리인 지경고개에 도착하게 됩니다.
낙동정맥 부산구간은 사실상 마무리 됩니다.
오후5시30분경인데 어둠이 깔려 등불을 밝힌부산CC 모습을 담아봅니다.
지경고개(녹동마을)에 도착 오늘 낙동정맥 제3구간 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가 뒤 덮고 있다하여천구만별(千龜萬鼈)이라고 불리우는 금정산에는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범어3기,금정8경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신라시대(67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자리잡고 있고,
등나무 군락(천년기념물 제176호)과 함께 부산의 역사와 문화, 민속이 살아 숨쉬는 관광명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낙동정맥 제3구간 만덕고개~금정산~지경고개,
여러 이유때문에 개인적으로 정상적인 진행은 아니었지만 다시 찾아간 금정산은 역시 멋진모습으로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쾌청한 날씨에 대박으로 즐겼던 행복산행! 이루형언할 수 없는 멋진 추억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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