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인왕산,북악산 연계산행의 행복
2017년 첫 산행을 서울 3산 연계산행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엠티 산악회' 2017년 첫 수요산행을 서울분지를 둘러싸는 내4산(內四山) 북악산,남산,낙산,인왕산인데,
그 중 가장높은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안산을 연계산행으로 정유년 첫 산행을 기쁨으로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2016년 12월26일 옆지기 입원하여 28일 수술을 받고 1월3일 가까스로 퇴원...
산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않아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침을 해결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며 다녀오라고...
산행코스 : 서대문역1번출구~경기대~천연뜨란채아파트~안산~서대문구의회~아이파크아파트~인왕산~윤동주시인의언덕~
창의문~북악산(백악산)~청운대~곡장~숙정문~말바위쉼터~삼청공원~삼청동(삼청동수제비)
산행거리는 약13km이고, 산행시간은 6시간39분정도 소요되었답니다.
안산(鞍山 295.9m)은
무악산으로도 불리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으며 높이는 295.9m로 낮으막한 도심의 산입니다.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고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가 출몰하기 때문에 여러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했기에 모악산라고도 불렀다는 설도 있답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하륜(河崙)이 안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답니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습니다.
서울 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인왕산(해발 340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대문독립공원, 이진아도서관이 위치합니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안산에 연결되어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합니다.
정상 부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서울시 중구 일대를 관망하는 전망이 뛰어납니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奉元寺)가 남쪽에 있으며 관음보살을 닮았다는 관음바위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근래 새로운 모습으로 보수한봉수대(서울특별시 개념물 제13호)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인왕산(仁王山 338.2m)은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 경계에 있는 산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입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입니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필운동,누상동,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北岳山)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납니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습니다.
경희궁 뒷편 사직동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앞인왕산로 1길을 서울성곽이 이어지며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 범바위를 지납니다.
서울성곽은인왕산 정상부로 이어지는데 메부리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로 이어지고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자하문(창의문)과 연결되고 그 다음 북악산으로 이어집니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다양한 이름들이 지어져 있답니다.
선바위는 인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데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답니다.
모자를 닮은 모자바위, 돼지를 닮은 돼지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가 있고
남쪽 능선 정상에 있는 달팽이바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유명합니다.
호랑이 굴이 있는 남쪽 능선에 호랑이바위, 정상부에 이르면 뾰족한 메부리바위가 있으며 삿갓모양의 삿갓바위가 인왕산 정상입니다.
그외 치마바위, 해골바위, 기차바위, 부처님바위 등이 있답니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지명이 환원되었답니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군사적인 이유로 1968년 1월 21일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3월 25일 정오부터 개방되었답니다.
북악산(北岳山, 342m)은
서울 경복궁(景福宮) 북쪽에 솟아 그 진산(鎭山)을 이루어온 산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합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입니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답니다.
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답니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답니다.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습니다.
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仁王山)·낙산(駱山)·남산(南山)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입니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답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계곡이 있습니다.
북악산은 예전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찾아 탁족회(濯足會)를 자주 열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후 소나무가 벌채로 사라지고 현재는 참나무류가 많답니다.
북악산 산정을 내려와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습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공원이 있습니다.
인왕산 선바위 모습...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에 오전10시에 집결하여 14명이 함께하는 산행이 이어지게 됩니다.
인창고등학교를 지나고...
서대문역1번출구에서 약50여m진행하여 삼우치킨호프집에서 우틀하고 도로를 따라 진행 인창고교와 경기대를 지나게 됩니다.
경기대를 지나 100여m진행 후 우리은행365 무인지점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천연뜨란채아파트가 나타납니다.
천연뜨란채아파트 정문을 조금지나 맞은편 안산들머리입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멀리 보입니다. 사진으로 담기는 하였지만 미세먼지 가득하여 미흡한 사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오르막 계단길이 멈추면서 우측으로 정자와 함께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사진을 담기는 하였지만 올리지는 않았고...
전망대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능안정은 전망대를 지나게 되어도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인왕산을 바라봅니다.
전망대에서 좌측 능안정과 안산 정상부를 담아봅니다.
안산에서 바라본 서울...
좌측 안산정상과 우측 인왕산
가운데 한성과학교 그리고 인왕산을 올라가기위해 지나야할 아이파크 아파트단지가 내려다 보입니다.
능안정입니다.
능안정을 지나면 또 하나 정자가 나오고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산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게 되면 봉원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무악정방향으로 이어갑니다.
안산 봉수대를 바라봅니다.
안산(갈마재)의 명칭 유래는
크게 세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산의 모양이 길마와 같이 생겨서 길마재, 또는 한자명으로 안산이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조선 명종 때 명리학자 남사고(南師古)에 따르면 “서울 동쪽에 낙산이 있고 서쪽에는 안산이 있으니, 반드시 당파가 생기는데,
‘낙(駱)’는 각마(各馬)이니 동인은 갈라지고, ‘안(鞍)’자는 혁안(革安)이니 서인은 혁명한 후에야 안정되리라.” 하였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고 하는 일화도 있습니다.
둘째,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이 산을 어머니의 산이란 뜻으로 모악이라 하고, 이 산 남쪽의 고개를 떡고개, 남산 동쪽 고개를 벌아령이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떡을 가지고 나가려는 어린애를 꼬이고, 또는 때리겠다고 얼러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셋째,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둘이 있는데, 동쪽 봉수대는 평안도 강계군 만포진을 기점으로 하여 육로로 고양시 봉현을 거쳐
이곳에 이르러 남산 셋째 봉화에 통하고,
서쪽 봉수대는 평안도 의주의 고정주를 기점으로 하여 평안도와 황해도의 바닷길로 고양시 고봉을 거쳐
이곳에 이르러 남산 넷째 봉화에 통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봉화뚝 봉우재라 하며, 또는 높고 험한 산이란 뜻으로 기산 · 기봉이라고도 하였다합니다.
전망대에서 진행했던 방향을 담아봅니다.
전망대에서 곧바로 이 바위를 타고 올랐습니다.
봉수대아래 절벽입니다.
봉수대에 도착하여 인왕산을 당겨봅니다. 인왕산 산성길이 확연하게 보이고, 인왕산 너머 북악산도 보입니다.
거북바위?
진행했던 방향은 미세먼지로 인해 사진이 흐릿하니 미흡합니다.
봉수대 모습을 역광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동봉수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지로 1993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답니다.
면적은 381㎡, 상부 연대(烟臺) 108㎡, 하부 연대 307㎡이고, 봉화연조대의 높이 3.2m로, 자연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답니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으로,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위급한 소식을 횃불로 중앙에 전하는 통신시설이었답니다.
현재의 동봉수대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남산 중앙 봉수대와 연계하여 제3봉수로의 봉화를 올리기 위해
봉수대가 멸실된 지 100년 만인 1994년 8월 30일 서대문 향토사연구회의 자문을 받아 복원하였답니다.
서봉수대는 동봉수대로부터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현 군부대의 통신탑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추정된답니다.
헬기장과 군통신탑...
동봉수대를 내려서 진행하며 실제 정상인 군통신탑을 담아봅니다.
안천약수를 지나고...
무악재역 갈림길에서 무악재역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쉼터에서 휴식하며 청솔모를 담아봅니다.
다시한번 담아보고...
안산자락길
안산자락길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7km 구간의 원점 회귀 코스입니다.
자락길 이정 화살표인 노란색 화살표나 파란색 화살표 중 한 방향을 선택해서 걸으면 됩니다.
길을 걷는 내내 같은 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헷갈리지않고 원점회귀할 수 있습니다.
한성과학교와 서대문구의회로 내려서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로 진행하게 됩니다.
보호수를 지나고...
서대문구의회를 지나 좌틀하면 독립공원주차장을 지나고 큰 도로를 건너 아이파크 아파트로 들어섭니다.
도로를 건너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며 뒤돌아 한성과학교와 뒤로 안산정상이 빼꼼히 보입니다.
117동 사이로 진행을 이어갑니다.
인왕산인왕사일주문을 들어서고...
인왕산제일문 벽화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인왕사대웅전 뒤로 선바위가 보입니다.
국사당으로 진행을 하고...
인왕산 국사당(仁旺山國師堂)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인왕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당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입니다.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남산 꼭대기에서 인왕산 기슭의 선바위 밑으로 옮겼답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태조 5)년 한양을 지키는 수호신사로서
북악신사와 함께 남산(목멱산 木覓山)을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하고 남산 팔각정이 있는 곳에 목멱신사를 두고 산신제를 지냈답니다.
매년 나라에서 재사를 지내면서 사당을 국사당(國師堂)이라고 부르게되었답니다.
하지만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에 신궁(神宮)을 지으면서 인왕산(仁王山)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국사당을 지나며 선바위를 올려다봅니다.
내려다본 국사당...
국사당은 원래 지금의 남산 팔각정 부근에 있었으나 일제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면서 신궁보다 높은 곳에 사당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인왕산 자락인 이곳으로 이전시켰답니다.
사당 안에는 무속신앙으로 여러 신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무학대사를 모시고 있다 하여 국사당이라 불린답니다.
선바위입니다.
인왕산은 남쪽의 목멱산, 북쪽의 백악산, 동쪽의 낙타산과 함께 한양의 서쪽을 두르고 있는 내사산 중 한 곳입니다.
산이 깊어 호랑이가 산다고 해서 혼자서는 고개를 넘지 말라고 할 정도로 험한 곳이었습니다.
인왕산 서쪽 자락에 툭 튀어나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바위가 선바위로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모양이라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고도 합니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죽어서 석불(石佛)이 되었다는 인간의 화신으로 설화되고 있으며,
여기에 빌면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하여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더욱 크다고 하여 작은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붙임’이라 하며, 이러한 바위를 ‘붙임바위’라고도 합니다.
조선을 개국하면서 선바위를 도성의 경계 내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밖에 둘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데
안에 두자 주장한 사람은 무학이었고, 밖에 두자 주장한 사람은 정도전이었습니다.
불교와 유교가 기세를 두고 벌인 싸움으로 이성계가 정도전의 의견을 따르면서 선바위는 성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모자바위...
옆에서 선바위를 담아보고...
선바위 뒤로 진행하여 바라본 성곽길과 선바위 모습...
멀리 남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보이지 않습니다.
선바위에는 비둘기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근하면 날아갔다 다시 선바위로 몰려듭니다.
인왕산(仁王山)은 동쪽의 낙산과 같이 좌우용호(左右龍虎)로 일컫는 산으로 백호(白虎)인 이 산 역시 화강암이 노출된 산입니다.
조선 건국 당시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많아서 호환(虎患)이 자주 일어났고,
그 후 어느 임금이 산신에게 호랑이를 모두 압록강 저쪽으로 몰아내 달라고 빌었답니다.
그래서 인왕산 호랑이가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 때 새끼를 가진 암호랑이가 먼길을 갈 수 없어 남겨 두었더니
그 호랑이가 낳은 새끼들이 번식하여 인왕산에는 여전히 호랑이가 들끓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답니다.
범바위를 바라보며 진행을 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얼굴바위는 전혀 얼굴바위같지 않았습니다
뒤돌아 담아보고...
산수유전망대를 지나고...
산수유전망대에서 성곽길을 담아봅니다.
얼굴바위를 올려다보고...
도성 성곽길 밖으로 넘어서야하고...
도성 성곽을 넘어 성곽길을 담아봅니다.
도성 성곽과 달팽이바위를 ...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다시 진행을 이어가고...
철계단을 올라서 도성길로 계속 이어집니다.
뒤돌아 도성길을 담아보고...
인왕산 정상인 매바위를 바라봅니다.
매바위로 진행하며...
진행한 성곽길을 뒤돌아보며 범바위와 도성길을 담아봅니다.
인왕산의 정상 삿갓바위 인증을 하고...
서대문구의 홍제동과 종로구의 무악동, 누상동, 옥인동, 부암동에 걸쳐있는 인왕산(仁王山)은 정상의 높이가 338.2m입니다.
북한산에서 볼 때,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측에 낙산, 우측에 인왕산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룬답니다.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의 웅대함이 등산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정상에 서면 서울 중심가의 빌딩들과 청와대 부근의 녹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인왕산 정상 삿갓바위
인왕산은
서울의 서쪽인 종로구 옥인동, 누상동, 사직동, 서대문구 현저동, 홍제동, 부암동 경계에 있는 큰 산으로 인왕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궁궐터를 잡을 때, 무학대사가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으로 용호를 삼으려 하였답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자고로 제왕은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스렸고, 동향한 것은 듣지 못하였다” 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백악산 아래에 궁궐이 들어섰답니다.
그 일이 좌절되자 무학이 탄식하면서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백 년 후에 내 말을 생각하게 되리라” 하였답니다.
인왕산 정상에서 기차바위와 북한산, 백악산을 바라봅니다.
신라 말의 도승 도선대사의 『산수비기(山水秘記)』에
“국도를 정할 때 정성(鄭性, 정씨 성을 가진 자, 곧 정도전을 말함)의 말을 따르면 5세가 되지 못하여 혁명이 일어나고,
2백 년 만에 큰 난리가 일어나 백성이 어육(魚肉)이 되리라”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 말이 들어맞아서 그런지 단종 때 세조의 찬탈이 생겼고, 2백 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명종 때의 천문지리학자 남사고가 예언하기를, 인왕산 아래 사직골에 왕의 기운이 있다 하였다.
그의 예언이 들어맞아 선조가 사직골에서 태어났답니다.
인왕산 정상은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점 표시 입니다.
책바위 뒤로 도성 성곽길과 좌측 기차바위가 보입니다.
기차바위로 진행하였다가 다시 빽하여 성곽길 계단으로 내려서 창의문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진행할 기차바위입니다.
뒤로 북한산 족두리봉,향로봉,비봉,승가봉,사모바위,문수봉,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입니다.
기차바위 사면은 치마바위입니다.
기차바위에서 내려다봅니다.
기차바위에서 북한산과 북악산을 바라보고...
기차바위와 북한산...
해골바위
다시 빽하여 도성길 계단을 따라 창의문방향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말이 생겼으며, 특히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서울의 산이 바로 인왕산입니다.
조선 태종 5년(1405) 7월에는 호랑이가 경복궁 내정까지 들어왔고, 세조 10년(1464) 9월에는 창덕궁 후원에 들어왔으며,
연산군 11년(1503) 5월에는 종묘에 침입하였답니다.
그 밖의 민가에는 피해가 실로 많았고, 세조는 친히 세 차례나 백악에 올라가서 호랑이를 잡았으며,
시 외곽인 양주 수락산과 고양 벌고개에까지 나아가서 호랑이를 사냥하였다합니다.
명종 때 양근 땅에서는 30여 명이 호랑이의 해를 입었고,
선조 때는 고양 등지에서 흰 이마의 호랑이가 횡행하여 4백여 명이 해를 입었답니다.
조정에서는 수많은 군대를 출동시켜 호랑이를 잡게 하였으므로 ‘머리는 인왕산 호랑이 같다’ 등 많은 속담과 속설이 생겨났으며,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습니다.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라는 말은 출세한 사람이 있으면 그 덕을 입어 잘된 사람이 많다는 말이고,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또 ‘인왕산 중허리 같다’라는 말은 배가 부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
윤동주시인의 언덕은 눈으로 쳐다보고 창의문으로 진행합니다.
최규식 경무관 동상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일당을 저지하다 장렬히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입니다.
서울성곽의 풍부한 생태, 역사, 문화,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길
- 걷고 싶은 서울의 역사적인 상징을 지닌 길
-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을 품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 길
- 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으로 이어지는 18.627㎞의 둘레 길
서울성곽 문화재현황 - 관광지명 : 서울성곽(서울城郭)
- 지정번호 :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0호
- 조성배경: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있으며
그 둘레가 18.627㎞에 이르는 서울성곽은 4대문인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4소문인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을 포함,
조선의 도읍지 한양을 에워싸고 있는 도성길입니다.
청계천 발원지 표석...
창의문...
창의문(彰義門)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립니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었답니다.
북한(北漢)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閉門)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답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는 능양군(陵陽君:인조)을 비롯한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문루(門樓)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년(영조 16)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습니다.
1958년 크게 보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입니다.
창의문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탐방객 안내소입니다.
탐방출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신분증을 확인하고 패찰을 건네주면 탐방이 시작됩니다.
창의문...
성벽이 능선을 따라 보존되어 있고 4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일명 자하문(紫霞門)이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에 있어 시내 중앙지와 쉽게 연결됩니다.
북악산을 오르는 코스는 세 가지입니다.
첫 코스는 와룡공원 쪽 말바위 쉼터에서 곡장과 백악마루를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이고,
두 번째는 홍련사 쉼터로 올라 숙정문과 백악마루를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이며,
마지막 코스는 창의문에서 출발하여 백악마루와 청운대·곡장을 지나 숙정문에서 홍련사 쉼터로 내려가거나
말바위 쉼터로 내려가거나 하는 코스입니다.
백악마루의 백악산 정상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게 됩니다.
자북정도
1968년 북에서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청와대를 습격하여 피로 물들일 뻔 했었는데, 국가안보의 투철한 정신으로
물리쳤다는 기념비인듯...
창의문에서 백악마루에 이르는 길은 서울성곽의 악명 높은 계단길입니다.
그 가파른 길을 내려설 것이냐 올라설 것이냐의 선택이지만 오늘은 창의문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북한산을 바라보며 담아봅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서울성곽의 길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발끝에서 정상까지 좀체 숲 사이로 숨어들지 않으며 걸음을 주눅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북악산의 가장 가파른 길의 숨찬 행보는 의외로 차근차근하기만합니다.
하나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다음의 길이 열리고 구불구불한 성곽의 길을 따라 차곡하고 차곡하게 342m백악의 정상까지 차오르는,
숨 때문에라도 숨죽여 걸을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백악산 인증
돌고래 쉼터에서 한숨돌리고 백악마루 정상인 백악산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북악의 제일 높은 땅, 백악마루.
북악산은 예부터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렸답니다. 청렴을 뜻하는 백(白)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망을 뜻하는 북(北)으로 바뀌었다합니다.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 1.6km구간은 전체가 급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숨가쁘게 올라서 돌고래쉼터에서 한숨돌리고 백악마루에 올라서게 됩니다.
백악마루는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4개의 산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광화문 앞으로 큰 도로가 쭉 뻗어나가는 모습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우측으로 인왕산 성곽길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미세먼지 가득하여 조망을 즐기지못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세종로 네거리 부근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면 산이 마치 하얀 연꽃 봉오리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원래 '백악산'이라 불렀던 모양인데,
그 바로 아래에 조선왕조의 정전인 경복궁을 터 잡아 짓고 난 후로 한양의 북방 진산이 된다하여 '북악산'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북악산(백악산)제일 높은곳에서 인증을...
1.21사태 소나무
1968년 1월21일 김신조 외 30여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하였을 때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수령200년된 노송이 15발의 총탄을 맞아 총탄자국이 남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이 소나무를 '1.21 사태 소나무'라고 부릅니다.
서울성곽은 백악마루를 지나며 숨을 고른답니다. 길은 오르고 내리지만 창의문에서 백악마루에 이르는 길만큼 가파르지 않습니다.
청운대(293m)
북악산 전면 개방을 기념하는 뜻에서 세운 기념비로 경복궁 입체 조감도를 보는듯이 궁궐전체를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도성길로 이어지는 성곽길을 걷고 좌측 곡장(반원형으로 튀어나온 성곽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을
들렸다가 다시 내려서게 됩니다.
성곽길에서 곡장까지는 40m입니다.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 5년인 1396년부터 수도(首都) 한양을 지키기 위해 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을 따라 지어진 성곽입니다.
그 사이사이엔 사대문(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이 들어섰다.
성곽 높이는 5~8m, 둘레는 18.6㎞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6개 코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양의 주산인 백악(북악산·해발 342m) 구간은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창의문에서 시작해 혜화문에 이르는 4.7㎞ 길에선 경복궁과 세종대로, 한강까지 바라볼 수 있답니다.
백악 구간은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특수부대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인 1·21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 개방됐습니다.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1·21사태 소나무'엔 15발의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청와대와 가까운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로 입장할 땐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합니다. 일부 구간에선 사진 촬영도 제한됩니다.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낙산(駱山·해발 124m) 구간은
길이 2.1㎞로 1시간 정도면 돌 수 있습니다.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가깝습니다.
낙산공원 놀이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은 일품입니다.
흥인지문부터 장충체육관까지 이어지는 흥인지문 구간(1.8㎞)에선 보물 1호인 흥인지문과 동대문시장,
서울의 새 명소로 자리 잡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들를 수 있답니다.
장충체육관부터 백범광장까지 이어지는 남산 구간(4.2㎞)에선 늦가을 단풍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시는 신라호텔 뒤편 다산동 성곽길 단풍을 '강력 추천'했답니다. 8m 높이 성벽과 어우러진 붉은 단풍이 운치 있습니다.
숭례문 구간(1.8㎞)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사적 제256호), 옛 러시아공사관(사적 제253호)이 있답니다.
이어지는 인왕산 구간(4㎞)에선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았던 경교장(사적 제465호),
제암리 학살을 세계에 알렸던 미국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등을 빼놓을 수 없답니다.
이 구간은 길이 험준한 편이지만 성곽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자바위, 달팽이바위 등 기암괴석과
인왕산 정상(해발 339m)에서 내려다보는 고궁과 서울 도심의 풍광이 피곤함을 씻어줍니다.
철통경계대장군, 부대관리여장군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많이 낡아 보기가 흉했습니다.
숙정문에 도착...
촛대바위를 지나 숙정문에 도착합니다.
숙정문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입니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으며,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답니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답니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합니다.
풍수설에 북문을 열어놓으면 음풍(陰風)이 들어와서 서울 사대부가 부녀자들에게 음분(淫奔)이 많이 생긴다 하여
항상 문을 닫아두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정월 보름 전에 부인이 이 문에서 세 번 놀면 액막이가 된다는 속설도 있답니다.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답니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 길은 나있지 않습니다.
1976년 북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답니다.
삼청각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입니다.
1972년 건립된 1970년~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입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제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답니다.
말바위 안내소
표찰을 반납하고 북악산 탐방을 마치게 됩니다.
말바위 쉼터....
말바위 유래...
말바위 쉼터에서 남산을 바라봅니다.
말바위 등산로 아치형 문을 내려서고...
삼청공원을 지나 삼청동수제비집에 도착 뒤풀이하며 오늘 안산~인왕산~북악산 연계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꽤나 유명하다는 삼청동수제비집...
맛은 글쎄요??
마을버스타고 시청으로...
그냥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참새는 역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니...휴~
2017년 일출산행으로 동네산인 구름산~가학산~서독산 연계산행 후
정유년 첫 산행으로 찾아간 서울 도심3산 연계산행! 나름 의미있는 첫 산행으로 기억될듯...
첫 테이프를 기분좋게.... 행복예찬의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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