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화령재~갈령
백두대간 속리산구간을 산행하기위해 화령재에서 시작하는 코스에 동행하게 되었답니다.
원래는 갈령에서 시작하는 형제봉~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부터 시작하려했었는데, 옆지기가 신청을 하자하여
동행하게 되었지요.
정작 옆지기는 친정모임으로 산청 청계계곡으로 금요일 오후에 2박3일 여정으로 떠나고~ㅠㅠ
어쩔 수 없이 홀로 대간길에 합류하게 되었네요.
산행코스 : 화령재~산불감시초소~봉황산(740.8m)~459봉~비재~510봉~조망바위~억시기 갈림길~못재~헬기장~
갈령 삼거리~갈령(49번지방도로)
산행거리는 약 12.6km이고 산행시간은 6시간39분 소요 되었답니다.
봉황산 (704.8m)
경북 상주의 봉황산(鳳凰山 740.8m)은 중화지구 화령(化寧) 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대간상의 산입니다.
1300여년 전 봉황새가 이 산에 날아들어 30여년 정도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합니다.
인근에서는 “정상을 봉황머리처럼 원만하게 빼어 올리고 좌우 양 날개를 길게 펼친 형국이 봉황새 같아서”라고도 합니다.
- 봉황산과 구병산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는 "송천은 상주의 구봉산(九峯山)에서 발원하여 화령(化寧) 과 중모현을 지나 황간현에 이른다"고 하였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峰)산이라 한다"는
기록과 함께 고을 동쪽 43리에 또 다른 구봉(九峯)산이 있다고 적혀 있답니다.
그리고 조선광문회 본 「산경표」(1913)에는 속리산, 구봉(峯)산, 봉황산이 모두 함께 나란히 나옵니다.
백두대간의 산줄기 가운데 『증보문헌비고』의 기록, 즉 화령과 중모현을 지나 황간현에 이르는 송천의 발원으로 알맞은 산은 오로지 봉황산 뿐이랍니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이 틀리지 않으려면 구봉산을 봉황산으로 바꾸거나 혹은 구봉산이 곧 봉황산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산경표」는 분명히 봉황산과 구봉산을 별개의 산으로 다루고 있답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자면 구봉(峯)산은 구봉(峰)산(=속리산)과도 별개의 산이랍니다.
산행들머리 화령재
화령은 행정구역상 화서면이라 부르지만 지역사람들에게는 화령으로 더 알려져 있답니다.
옛날 화령현 소재지였던 까닭입니다.
그 당시 무사들이 살았다는 무동, 현감이 살았다는 항현, 관곡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던 창안 등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답니다.
이 일대의 특징은 지대가 250~400m로 높은 고원이어서 조그마한 야산들도 300m가 넘고 사방 어디에서나 모두 올라오게되어
이 흐름은 화서, 화동, 모서, 모동면을 지나 추풍령까지 이어지는데, 상주에서는 이를 중화지구대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의 요충지로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치열했던 화령재는 6.25전쟁까지 쉼 없는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으며
전쟁의 흔적을 알리는 전적비와 공적비들이 석가여래상과 함께 서 있답니다.
중화의 중심 화령 5일장
신라시대에는 "답달비군"(답달은 큰 산을 뜻합니다)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쳐 부르다
고려시대 때 "현"으로 바꾸어 "상주목'아래 두었던 화령은 고종 32년 상주군 화령면 명명되어 현재(상주시 화령면)에 이르고 있답니다.
오늘날에는 25번 국도가 지나지만 딱히 들어 내세울만한 물산이나 풍습이 없는 탓에 여전히 한적한 시골을 면치 못하는 곳입니다.
굳이 들자면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는 화령장터가 이직도 소문난 닷재장으로 유명하답니다.
어렸을때 아버님이 옥천군 청산면 시골집에서 멀리 화령장으로 소를 사고 팔러 다녔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보았답니다.
화령정
화령재 고갯마루에 1990년도 건축 된 화령정은 고갯길의 내력과 화령의 역사를 기록한 편액을 걸어 두었는데 삼국시대 지명의 유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역사를 기록하여 이 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알리고 있답니다.
사당에서 출발한 '기분좋은산행'산악회버스가 들머리인 화령재에 도착하여 단체인증사진을 담고 곧바로 대간길에 접어 들었지요.
곧바로 산길로 접어 듭니다.
25번 지방도로로 내려섭니다.
수청삼거리에서 산길로 접어들게 되었구요.
소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등로였구요.
장마기간에 비가 오지않을까 염려했지만 폭염주의보의 재난문자까지, 어찌나 습도가 높고 후덥지근하던지
땀을 무척 많이 흘리게 되었답니다.
화서면 상현리 마을전경
중앙에 343m봉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으며 좌측 앞쪽으로 화령초등학교가 조망 됩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납니다.
청계산과 앞에 보이는 대궐터산
약간 오름길의 된비알로 이어지는 산행은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져 봉황산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봉황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병산 및 속리산
봉황산에서 한참동안 휴식하며 에너지를 보충하고 비재(비조령)방향으로 이어갑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등로는 몇차례의 내림과 오름을 거듭하며 비재까지 이어집니다.
즐거운 점심상을 펼쳤구요.
비재(비조령) 생태탐방로
백두대간 비조령 표지석
봉황이 나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조재(飛鳥) 또는 비조령(飛鳥嶺)입니다.
해발 427m
비조령 전망테크
비조령에서 갈령삼거리까지 이어지는 등로는 여섯~일곱개의 봉우리를 끝없이 오르고 내리는 아주 힘이 무척든 산행로였지요.
환상으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에 그런대로 행복산행의 발걸음으로 이어졌답니다.
조망바위에서
암릉구간도 제법 많이 지나게 됩니다.
충북알프스 구병산으로 이어지는 표지입니다.
못제
못제에 오르면 좌측으로 동관음을 지나 구봉산으로 내려서는 충북알프스가 분지하는 곳에 후백제 견훤의 전설이 서린 못제가 있으며
이곳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어 못(池)이라는것을 입증 해 주고 있는 대간상의 유일한 습지이기도 합니다.
못제전설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매일 싸움을 벌여 이겼답니다.
싸움을 벌이는 족족 패하는 황충이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비밀리에 캐내어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것을 알아내었답니다.
황충은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고 소금 삼백 가마를 못제에 풀었답니다.
그러자 견훤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답니다.
이는 광주의 한 처녀가 지렁이와 정을 통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열다섯이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일컬었다는 삼국유사의 기이편에 전하는 애기에서 비롯됩니다.
못제의 설명
헬기장을 지납니다.
갈령삼거리에 도착합니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갈령'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입니다.
갈령으로 이어지는 등로입니다.
헬기장을 지나게 됩니다.
해발 443m갈령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하게 됩니다.
葛嶺은 '칡고개'라는 뜻입니다.
다행히 계곡에 물이 있어 알탕으로 하루의 땀과 피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답니다.
다소 체력이 바닥나 무척이나 힘든 대간길 산행이었지만 마음만은 흡족하고 뿌듯하였답니다.
다음 속리산구간을 기대하며 알찬 산행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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