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교동도 화개산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날! 이번부터 사전투표제가 시행되어 산행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않기위해
사전투표를 하였답니다.
'낙동비경길'인 봉화 체르마트길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기회를 놓쳐 다른곳으로 물색을 하던 중
시간이 멈춰진 섬! 교동도 화개산 산행과 낭만과 정겨운 산책길인 다을새길 '강화 나들길'트레킹을 신청하게 됩니다.
산행코스 : 교동면사무소~연산군 유배지~화개약수~효자 묘~화개산~청동기 암각화~ 봉수대~화개사~교동향교~비석군~
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선착장~교동향교~대룡시장~주차장
산행거리는 약15km이고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되었답니다.
교동도(喬桐島)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
높을 ‘교(喬)’에 오동나무 ‘동(桐)’자로 오동나무가 많아서 예전에는 오동나무섬으로 불렸답니다.
원래 이름은 ‘구름에 뜬 섬’이라는 뜻의 대운도(戴雲島)였고 ‘하늘에 닿을 새’라는 의미로 달을신(達乙新)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합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답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답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화개산華蓋山 259m)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산인 화개산에 오르면 교동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온답니다.화개산은 해발259.6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육지의 산과는 다른 섬산이라 경사가 제법 가파르답니다.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황해도 연백이 보인답니다. 교동도 끄트머리에서 넓이 3.2km에 불과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갈라져 있답니다.
맑은 날 교동도 최고봉인 화개산(259m)에 오르면 연백평야를 바라볼 수 있답니다.
민간출입통제선 북쪽에 있어 2000년까지만 해도 외부인들이 드나들기가 불편했답니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배지 구실을 했답니다.
'강화나들길' 동진포에서 월선포로 진행하며 담아본 풍경...
교동대교(喬桐大橋)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간의 연륙교로 강화도와 교동도간 연결다리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교동연륙교라고도 합니다. 이 대교는 총연장 3.44㎞로 2014년7월1일 정식 개통되었답니다.
교동도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관할 부대의 통제를 따라야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교동도로 진입할 수 있답니다.
교동면사무소
사당에서 오전8시20분에 출발한 '온라인'산악회버스는 휴게소를 들리지않고 교동대교를 건너 들머리인 교동면사무소에
오전10시20분경 도착을 합니다.
대룡시장을 둘러보고 산행을 종료함에 주차장까지 약1km정도 거리와 시간을 감안 하여야합니다.
교동면사무소 등산로 입구에 있는 등산로 안내판...
교동도(喬桐島)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북서쪽, 38선 근처 황해상에 있는 섬으로 강화도보다 서쪽에 있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해 있답니다.
2014년 완공된 교동대교를 통해 강화도와 연결되어 있으며,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이므로
민간인들은 이 섬을 자유롭게 이용할수 없답니다.
면사무소에서 600m진행하여 연산군 유배지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로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둡니다.
연산군은 서른살의 젊은나이에 유배를 당하고,
유배된지 두달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연산군의 묘는 북한산 자락 도봉구 방학동에 있답니다.
연산군유배지에서 약500m진행하여 오르는 등로는 약간의 오름길이었지만 그리 힘들지않게 오를 수 있답니다.
화개산정상까지 500m남았답니다.
초록세상으로 변하는 화개산의 풍경속으로...
화개약수
약수물 상태는 썩 좋지는 않았답니다.먹을 수 없을듯하여 마시지 않았답니다.
교동도의 제일 높은 화개산 위에 지어진 내·외성을 갖춘 산성으로
총길이 2,168m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으로 남쪽은 산정상부의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북쪽은 화개산의 북록에 걸쳐 전체적으로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다는 설명입니다.
효자 묘로 올라섭니다.
효자묘에 대한 설명...
화개산성의 너덜길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도중 전망이 열리는 곳에서 바라본 석모도 상주산
미세먼지로 인해 희뿌옇게 보였답니다.
화개산 정상 인증...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개산은 동서남북으로 열려있는 정상의 조망은 미세먼지로 인해 보여주지않는 아쉬움이었네요.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으로 높을 '교(喬)'에 오동나무 '동(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예전에는 오동나무 섬으로 불렸답니다.
원래 이름은 '구름에 뜬섬'이라는 뜻의 대운도(戴雲島)였고 '하늘에 닿을 새'라는 의미로 달을신(達乙新)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합니다.
고구저수지입니다.
연백에 면한 동북해안은 제방을 쌓아 고구(古龜)의 관개용 저수지의 완성으로 경지확장 및 경지정리를 하였답니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며, 연안의 저지(低地)는 이질(泥質)인 갯벌로 되어 있어서 어항의 발달은 불리하고,
간만의 차도 커서 선박의 출입도 그리 편리하지 못합니다.
교동평야 뒤로 북한땅 연백평야가 희미하게 보였답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답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한
화개산 정상인데 오늘은 조망이 완전 꽝이었답니다.
나무로 만든 화개산 정상목...
석모도의 상주산만 희미하게 보일 뿐, 해명산, 마니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답니다.
정상풍경...
대운정(戴雲亭) 팔각정입니다.
한꺼번에 몰렸던 산객들이 이동한 후 후미에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멋스러운 조망이 펼쳐지는 화개산인데...ㅠㅠ
화개산을 내려서며...
강화 화개산 청동기 암각화
암각화는 선사시대 신앙과 생활,사상 등 총체적인 선사문화를 표현하고 있으며,주로 풍요로운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으로
암각화는 지금까지 한반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북단인 이곳 화개산에서 발견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봉수대로 이어지는 등로가 초록빛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담아봅니다.
화개산 봉수대
1986년 4월 1일 강화군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되었으며 강화군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답니다.
화개산과 잇대어 있는 연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데, 봉수대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답니다.
터는 돌을 직사각 모양으로 쌓아 단을 만든 것으로 규모는 높이 2.5m, 가로 8m, 세로 6m입니다.
봉수대에서 조망한 석모도 상주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룡리와 교동평야...
대룡리를 당겨봅니다.
잘 정리된 교동평야...
봉수대에서 제법 가파른 등로를 내려서 좌틀하여 화개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이정표가 가르키는 화개사 방향으로...
문무정(文武井)
동쪽에 문정과 서쪽에 무정이 있어 두개의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로 합쳐져 흔적만 남았다는 문무정입니다.
문무정에 대한 설명...
작고 소박한 절 화개사에 도착합니다.
대법당으로 진행하였네요.
화개사 대법당에서 바라본 풍경...
200년 수령의 보호수와 화개사가 제법 그럴듯한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집니다.
교동향교로 진행하며...
교동향교에 도착할 즈음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교동향교는 담질 못했지만
월선포 선착장에서 다시 교동향교로 진행하였기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답니다.
읍내리 비석군
옛 조선시대 목민관들의 기념비 또는 송덕비를 모아 놓은 곳입니다.
읍내리 시골풍경...
교동읍성
이 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축조한 것으로 둘레 430m, 높이는 약 6m로 동남북 세 곳에 성문을 설치했답니다.
각 문에는 문루가 세워졌었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 하였답니다.
동문과 북문은 어느 때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에 폭풍우로 무너져 홍예(무지개 모양의 석축문)만 남아 있답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합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의 교동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으며,
군데군데 문을 내어 바깥과 통하도록 만들었답니다.
동진포에서...
동진포에서 바라본 석모도 상주산...
동진포
걷기좋은 산책로가 해안가를 바라보며 강화나들길 트레킹으로 이어집니다.
강화나들길 안내판이 있는 정자쉼터에서 쉬어갑니다.
정자에서 진행했던 화개산을 바라봅니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
월선포에서 교동대교를 바라봅니다.
그림같은 풍경은 미세먼지로 인해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이었답니다.
2014년 7월에 개통된 교동대교 3.44km왕복 2차선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때묻지않은 교동도 신비의 자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답니다.
선명하게 담은 놀부님 작품...
강화나들길 다을새길 9코스 시작점인 월선포 선착장입니다.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외포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창후리 선착장에서 월선포 선착장으로 여객선이 오고 갔답니다.
월선포에서 교동면 상룡리를 지나 교동향교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갑니다.
교동면 상룡리마을로 이어갑니다.
교동면 상룡리 마을에서 진행했던 화개산을 바라봅니다.
강화나들길 이정표를 보고 진행을 하게 됩니다.
안양사지(安養寺址)도 지나고...
교동향교
교동향교(喬桐鄕校)
교동도 교동향교는 인천 유형문화재 28호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가장 오래된 향교로 알려져 있답니다.
고려 충렬왕 시절 안향이 중국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성리학)을 들여와
당시 개성의 성균관에 공자의 초상화와 각종 제사도구를 안치하기전 임시로 교동에 있는 향교에 두었다고 전합니다.
1127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합니다.
창건 당시 화개산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부사 조호신(趙虎臣)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답니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고려 유학제거로 있던 문성공 안유(본명은 향, 1243∼1306) 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 향교에 봉안하였다고 전합니다.
노릉암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대성전(大成殿)
공자의 신주와 위현들의 위폐를 모시는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증자, 자사자, 맹자 오성위와 송조2현(정자, 주자),
우리나라 18현의 위폐가 모셔져 있으며
석전대제가 중요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답니다.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의 배움을 익히고 닦는 명륜당입니다.
교동향교에서...
다시 담아보는 읍내리 시골풍경...
보호수 느티나무 모습이 근사하여 담아봅니다.
조금 당겨보고...
느티나무 보호수
교동향교를 내려서 읍내리비석군을 지나 대룡시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느티나무 보호수가 멋져 여러번 담아 보았네요.
교동도에 감나무가 제법 많이 있었답니다.
오후가 되면서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자욱해 조망은 전혀 없었답니다.
평화의 섬 교동도 안내판
대룡시장
실향민들과 함께 시간이 멈춰버린 대룡시장
교동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된 대룡시장은 그런 피란민들이 임시로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시장입니다.
고향에 있는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은 오랜 세월 개발이 되지 않아 지금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으로 남아있답니다.
실향민들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등지면서 가게는 몇 개 남지 않았고
시장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었네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을 알리는 모습이 옛생각을 절로나게 합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교동도 주민들이 참외나 감을 싣고 연백으로 건너가 쌀과 바꿔왔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연백 사람들은 교동도로 피란을 왔고,
38선이 그어지면서 실향민이 된 피란민들은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60년이 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 유명한 교동 이발관
교동이발관 지광식 할아버지의 고향도 연백이랍니다.
전쟁 때 피란을 왔다가 교동도에 눌러살게 됐다는 할아버지는 해변에 나가 연백에 있는 고향집을 보며 실향의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날 바라보니 살던집이 헐리고 없어 아쉬움 가득했답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대룡식당에서 교동도 탐방온 기념으로 돼지국밥으로 마무리하며 대룡시장 탐방을 마치게 됩니다.
맛은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답니다.
대룡시장 탐방을 마치고 산악회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말장터 주차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시간이 멈춰진 섬! 평화의 섬! 많은 수식어가 내포한 교동도로 떠난 시간여행은 날씨가 받쳐주지않아 조금은 아쉬웠지만
비가 내리지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날씨 좋은 날 다시 찾아 여유잇는 트레킹을 하고 싶은 곳이 아닐런지!
교동도의 멋을 느껴보고픈 하루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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