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오산
몇해전 다녀온 구미의 금오산을 다시 찾게 되었네요.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양재역까지 이동하는게
수월치 않아 매번 좋은산을가게 되더라도 포기했었는데, 이번엔 지인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한채 산행길에 동행하게 되었답니다.
산행코스:공원주차장~해운사~도선굴~대혜(명금)폭포~할딱봉~돌탑봉~마애불~약사암~금오산~성안습지~
성안전위봉~칼다봉~금오산관광호텔~공원주차장
산행거리는 약9.7km이고 산행시간은 충분한 휴식 포함 6시간 30분정도 소요됨.
금오산(金烏山 977m)은 경북 칠곡군과 구미시, 김천시의 경계에 놓인 산으로
주봉인 현월봉(懸月峯)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는 산!.
산세는 동북쪽 구미방향이 험준하고 서남쪽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주초에 쾌청한 날씨가 주말에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중부지방은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라는 예보
하지만 금오산은 남부에 걸쳐있는지역으로 구름이 많이낀다는 예보~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선산쯤 달리는 버스에서 밖의 하늘은 구름이 잔뜩~
이러다간 지난번처럼 금오산 산행은 망치는것 아닌가하는 불안감~
열심히 달려 오전10시53분정도에 도착한 공원주차장, 산행준비를 하고 오전11시경부터 산행이 시작 되었네요.
주차장에서 바라본 우측 칼다봉 능선과 좌측의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은 구름속에 묻혀버렸으니,헐! 낭패
구름낀 날씨이지만, 혹시나 걷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행길에 접어들게 되었네요.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길의 우측에 있는 채미정은 하산길에 들러 보기로하고 진행을 이어가게 되었구요.
혹여 하산길에 들리지 못할까 염려스러워 조금 당겨 담아 보았네요.
채미정은 야은 길재 선생이 백이숙제의 덕을 사모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금오산 기슭에 그 높은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4년(1768)에 세운 정자이며
채미정이란 명칭은 중국의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으로,
야은이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한데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청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수록되어 있는 회고가(懷古歌)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야은 길재는 고려왕조의 몰락으로 인하여 봉모(奉母)를 핑계로 현실을 도피하여 선산(善山)에서 은거하였는데,
조선 정종 2년(1400)에 조정에서 태상박사(太常博士)의 직을 주었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
아스팔트 양옆으로 초록물결의 메타세콰이어길을 따라 금오산의 산행길! 함께 할수 있는 지인들이 있어 행복했구요.
도로 우측의 소나무숲길로 진행을 하여도 되지만,연초록의 메타세콰이어길이 흐린날씨속에 빛을 발휘하기에 더욱 좋았답니다.
금오산은 1970년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8년10월5일 자연보호헌장을 처음으로 공포한 곳이기도 ~
우측 나무계단길로 오르게 됩니다. 좌측은 해운사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탑승장이랍니다.
유난히 돌탑이 많은 금오산
돌탑21C, 1999년말 새천년을 맞아 금오산 오르는 길목에 21기의 돌탑을 세웠다 합니다.
금오동학(金烏洞壑)..
커다란 바위에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금오산의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의미라네요.
각 글자의 길이는 세로 90~100cm, 가로 50~70cm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고
이 글씨는 조선 중기의 명필로 특히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렸다는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75)의
필적이라고 알려져 있다는군요.
금오산성 외성의 대혜문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여말 왜구의 침입 때 지역 백성들이 성을 지켰다고 합니다.
영흥정
지하168m 암반층에서 맑고 신선항 양질의 지하수? 물맛은 그저 그랬던것 같네요. 전문지식을 갖춘 나로써는 평하기가~
해운사 가기전 우측에 고승 나옹선사의 7언시인 청산은 나를보고~~씌여 있었구요.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는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해운사에 도착하여 대웅전 좌측편의 위에 있는 도선굴의 모습을 담아보고
해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925년 중창하여 해운암(海雲庵)이라 하였으며, 1956년 3월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합니다.
해운사에서 대혜폭포 가기전 우측 도선굴로 향하게 되었구요.
도선굴로 향하는길은 깍아지른 절벽에 쇠말뚝을 박아 쇠줄을 연결하여 오르내림을 원활하게,
전날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매우 미끄럽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교차하여 지체가 되었답니다.
지난번에는 산객들이 많지않아 쉽게 도선굴에 도착할수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만든것이라는군요.
도선굴에 도착하여 아래의 풍광을 담아 보았는데, 날씨가 흐려 조금은 아쉽지만,해운사와 케이블카 및
산행 들머리였던 공원주차장과 구미시내의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도선굴..
대혜폭포 우측 절벽의 천연동굴로 신라 말 도선이라는 고승이 이곳에서 참선하여 도를 깨우쳐
풍수지리설의 창시자가 되었다고 한다네요.
또한 야은 길재선생이 세속을 떠나 이곳에서 수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구요.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답니다.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칸 있었다고 한다는데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합니다.
도선굴 안에서 밖을 향해 담아본 인증이구요.
도선굴에서 내려서 대혜폭포로 향하게 되었지요.한바탕 산객들이 지나간 후에 진행을 하게 되니 한산하더군요.
사진상으로 봐도 매우 미끄럽다는게 표현이 되는군요.상당히 미끄러웠으니까요.
도선굴에서 대혜폭포로 향해 도착 담아본 폭포의 옆면인데 수량이 거의 없다보니 폭포인지 분간이 어렵네요.
대혜폭포(大惠瀑布)
해발 400m지점에 낙차 27m의 폭포로 지난번 수량이 많았을때 끊임없이 떨어지는 장관을 감상했었는데~
이번엔 수량이 거의 없다보니, 이런 모습 이네요.
금오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합니다.
또한,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지방의 용수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구요.
대혜폭포는 명금폭포로 불리기도
1935년쯤 경북 도지사인 일본 사람이 이곳을 찾아 주변경관과 물소리에 매료되어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차가운 기운에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사물은 희미한데,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라고 탄복하고
자기의 시상(詩想)이 사라지기 전에 석수(石手)를 불러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 새겼다고 합니다.
그 후로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오늘날 명금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는군요.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沼)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욕담(浴潭) 또는 선녀탕이라고 합니다.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즐기고 시회(詩會)를 가졌다고 전해지고
폭포 옆 암벽에는 ‘욕담(浴潭)’이라는 예서체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데, 확인하지는 못했구요.
대혜폭포에서 한참동안 서로의 인증을 하고, 또한 감상을 즐긴후 이제는 본격적으로 오름이 시작되는 계단길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진행중 등로에서 담아본 건너편의 도선굴의 모습입니다.
대혜폭포까지 오름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수 있었다면 지금부턴 조금은 힘들게 올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쉬엄쉬엄 여유있게 오른다면 큰 어려움은 없답니다.
금오산 등반코스 중 가장 숨이찬 지점이라해서 예로부터 할딱고개라 불러 졌다는데?
할딱고개 오름길에 바라본 금오저수지와 금오관광호텔및 공원주차장 모습입니다.
할딱봉을 오르기전 담아본 도선굴 부근의 병풍바위군들 입니다.중앙에 조금 검은부분이 도선굴이구요.
할딱봉에 올라 칼다봉능선을 조망해 보지만, 운무가 걸쳐 있어 조금은 아쉬웠답니다.
할딱봉에서 조망해본 금오저수지및 공원주차장등 구미시내의 풍경입니다.
할딱봉을 내려서게 되었구요.
능선의 오름길이 숲속, 마치 원시림에 온듯 분위기가 죽여주었지요.
우측으로 금오저수지와 그 주변풍광을 계속해서 바라보면서 진행을 이어가게 되었구요.
전날 내린비로 인해 비를 머금은 물봉선의 군락이 산행로 우측편에, 아름다운 물봉선의 모습을 담아보게 되었답니다.
바닥이 미끄러워 주의를 요하는 오늘의 금오산 산행 이었구요.
이곳 이정표에서 마애불방향인 좌측 능선길로 올라서게 되었지요. 우측길로 정상을 오를수는 있지만,
마애불과 오형돌탑이 있는돌탑봉을 오르기 위해선 좌측길로 올라야 하거든요.
운무속에 갇혀버린 오늘의 금오산! 지난번과 똑같은 산행을 하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잠시 몰려 왔었답니다.
너덜지대를 지나게 되고요.
오형돌탑이 있는 돌탑봉 입니다. 마애불가는 등로에서 돌탑봉을 좌측으로 내려서는길로 향하여야만 오형돌탑이 있는곳이지요.
많은 돌탑들이 절벽과 바위사면및 쌓을수 있는 공간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답니다.
오형돌탑은 할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이 담긴 돌탑으로
한 할아버지가 학교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손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0년동안 인근 돌밭에서 손수 돌을 날라 쌓은 것이라고, 금오산의 "오"와 손주 이름 형석의 "형"를 넣어 오형돌탑이라고~
운무속에 갇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오형돌탑의 돌탑봉이 우리가 도착할 즈음부터 구름이 걷혀 행운으로
돌탑들을 감상할수가 있었답니다.
운무의 이동에 따라 운치를 더해주는 돌탑들의 모습이었구요.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의 모습까지, 이만큼이라도 보여줄수 있었음에 감사를 해야 하겠지요.
절경과 비경 삼매경속으로 흠뻑 빠지게 되었구요.
다행으로 걷힌 구름이 오형돌탑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했던것 같네요. 이제는 마애불로 향하게 되었네요.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금오산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
높이 5.55m인 이 불상은 거대한 암벽 모서리에 조각된 석불로, 불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게 좋은편이구요.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코·입 등도 원만하게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인 것이고.
어깨의 선은 매우 원만하고 자세도 좋지만, 가슴·팔·하체 등은 둔탁하게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팔굽을 약간 굽히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자세로 옷자락을 잡고 있다.
발은 곧게 서 있으며, 발가락은 매우 크고 듬직하답니다.
금오산 마애석불입상 옆 절벽 밑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이 샘에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무기는 길고도 모진 천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뒤 마침내 바라고 바라던 등천(登天)의 날이 왔다.
어느 따뜻한 봄날, 바위를 타고 천지가 진동하는 큰 소리를 지르며 서서히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언덕 아래 양지편에서 나물을 캐던 아낙이 뜻하지 않게 굉음(轟音)과 함께 이무기의 등천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너무도 놀란 나머지 방정맞게도 그만 “저 이무기 봐라!”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천년동안 용이 되고자 살아온 이무기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원통하게도 용이 못되고 철퍼덕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천애의 낭떠러지 절벽에는 떨어질 때의 흔적으로 홈이 패고 비늘 자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무기가 떨어질 때 생긴 홈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지금도 용샘이라 불려지며,
나병환자가 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전한다.
나병환자가 이곳에 있던지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온다 해서 한발(旱魃)이 심할 때는 인근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와 문둥이를
내쫓고 또 묘를 파헤치면 그날 밤부터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하는 영험 있는 곳이라 하여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마애불에서 이제는 약사암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고, 등로의 우측편에 석간수가 졸졸 흐르는데 먹어보진 않았답니다.
약사암의 범종각 입니다. 굳게 닫혀 있어 가볼수는 없답니다.
지난번하고 똑같이 약사암은 안개가 너무 심해 보이질 않았었지요.
약사암(藥師庵)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 약사봉 아래 있는 암자로
지리산 석불삼구 중 일구가 법당에 봉안되었다는 전설이 있다는군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답니다.
의상대사와 약사암의 전설
의상대사가 처음에 금오산 동쪽 바위 밑에 움막을 치고 그 속에서 수도 성불할 때 선녀가 하루 한 끼의 밥을 내려다 주었다고
이곳에 암자를 지었으니 곧 약사암(藥師庵)
지금까지 수도승은 물론이요 일반의 신방(蜃訪)도 많으며 이 암자에 참선해야 극락에 갈 수 있다하며
음력 4월8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백발노인들의 참선함을 볼 수 있답니다.
여기서 성불한 의상은 뒤에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동해 화엄의 대종사(大宗師)가 되었다.
약사암(藥師庵)이란 바로 약사여래에서 기인된 명칭이며 또한 민족의 거사인 3․1운동 때 33인의 대표로 만해 한용운과 같이
불교계의 대표로 백용성 스님이 이곳에서 참선득도(參禪得道)했다고 전해진답니다.
이 계단을 오르게 되면 약사암 일주문이 나오고 금오산의 정상인 현월봉에 도착하게 되지요.
동국제일문의 약사암 일주문
함께한 지인들 열심이 동국제일문의 약사암 일주문을 담기에 여념이 없네요.
금오산 정상석인 현월봉의 뒷모습
초생달이 걸려 있는듯한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는 현월봉!
금오산의 정상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새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 같다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합니다.정상석의 모습이구요.
금오산의 정상인 현월봉에서 인증을 하고는 오늘의 금오산 최고의 하이라이트라 할수 있는 약사암 전망대로 향하게 되었지요.
약사암에서 정상을 지나 헬기장 옆 이정표에 군부대가 있는 정상 철책을 따라 샛길로 진행하면 오늘의 쵝고의
약사암을 바라볼수 있는 돌탑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답니다.
약사암을 바라볼수 있는 돌탑 전망대에 당도하니, 운무가 사라지고 서서히 열리는 약사암과 그주변 및
구미시가지의 모습이 환상으로 펼쳐지더군요.
이곳 돌탑전망대 보단 조금은 안전한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우들, 저곳에서 바라보는 돌탑전망대의 모습도 괜찮답니다.
돌탑전망대에도 돌탑들이 쌓여있고, 약사암을 바라보는 좌측편은 깍아지른 절벽으로 천길 낭떠러지니,
안전에 주의를 요하여야 한답니다. 많은 사람이 오를수 없는 협소한 장소이다보니, 단체로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죠!
천길 낭떠러지에서 바라보는 희열과 약사암의 풍광에 흠뻑 빠지고 난후 이제는 허기가 오는듯 하여 점심을 먹게 되었지요.
오후 2시가 되었으니, 배는 고플수밖에,하지만 풍광을 즐기다보니 배고품도 잊게되고 나름 감탄으로 일관한 오늘의 산행.
지인3명과 아버님을 모시고 산행을한 지인, 모두 5명이 돌탑전망대의 산상의 진수성찬 푸짐하게 준비함에 한시간여
신선이된듯 즐겨 보았답니다.
함께 오신 아버님은 연신 금오산의 풍광에 오길 잘했다고 하신다. 1941년생이니,73세~ 대단하신분 몇번 뵙게 되었지만
늘 그 모습으로 산행하시는 열정을 가지신분~ 감수성 또한 풍부하시고~
운무속으로 감추어지는 약사암과 주변 돌탑들의 풍광!
약사암을 조망할수 있는 이곳 돌탑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약사암! 이토록 금오산을 찾게된 첫번째 이유이지요.
이번주 원래의 계획은 조령산의 절골코스의 암릉산행에 무게를 많이 두었었는데, 갑자기 나름 사정이생겨 금오산을 찾게 되었지요.
돌탑전망대의 모습입니다.지인들보다 먼저 이동을 하여 돌탑전망대를 바라볼수 있는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지요.
아쉬움에 다시한번 약사암을 담아보게 되었구요.
금오산의 정상부도 운무가 걷혀 선명하게 볼수가 있었지요.
905봉이 있는 능선의 산자락~ 이코스도 한번 가고 싶은 금오산의 코스인데~
건너편으로 이동하여 돌탑전망대의 모습을 담아보았답니다.
다시 헬기장으로 이동하여 정상부를 담아본 모습입니다.
약사암과 어우러진 풍광을 멋지게 감상하면서 즐거운 점심시간의 여유를 마음껏 누린후 이제는 칼다봉의 매력적인 능선길로
향하게 되었지요. 성안습지가 있는곳까지 내려섰다가 오르는 칼다봉!지난번 다녀왔던 그 코스대로 진행을 하게 되어
앞에서 진행을 하게 되었지요.
오후가 되니 서서히 조망이 열리더군요. 헬기장에서 담아본 모습입니다.
금오산성중수송공비(金烏山城重修頌功碑)
1868년(고종 5년)에 금오산성을 수축하였음을 기록해 놓은 비석 입니다.
정상에서 약 600m 떨어져 있는 성안의 동쪽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요.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1868년 이후 세운 것이라는군요.
성안습지에 도착
이곳 성안에는 옛부터 농작물을 심을수 있는 땅과 물이 풍부하여 화전민들이 생활 했다고 합니다.
번성기에는 성안에 40여 가구가 살았다고 전하며, 6.25전쟁때는 미공군과 국군이 주둔했다고 하는군요.
1970년대 화전민 정리사업으로 사라졌는데, 이곳에서 수확한 감자로 만든 감자술이 유명했다는군요.
성안습지공원을 조성하느라 분주? 예전의 모습이 훨씬 낫다는 개인적인 생각~
이곳 성안습지공원 조성하는곳에서 우측으로 성안전위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우측으로 진행하면 고인돌과 늪지대를 지나게 되는 금오동천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 이구요.
성안습지까지 내려섰던 산행길, 이제는 오름길로 진행을 하게 되었고, 올라서면 조금은 넓은 장소 이곳이 성안 전위봉 입니다.
성안 전위봉을 지나면서 조망이 열리는 칼다봉능선 이구요.
쾌청한 날씨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하늘이 열려주고 산자락및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모습도 선명하게 바라볼수가 있었네요.
함께할수 있는 지인들과의 행복한 순간! 미소짓는 얼굴모습에서 느껴지는것 같네요.
현월봉과 지나온 칼다봉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져 아름답게 보이니 담을수밖에 없었구요.
칼날같이 생겼다하여 칼다봉! 칼다봉(715m)에 도착하게 되었구요. 정상석은 없답니다.
진행방향에서 좌측으로 대혜폭포로 하산하는곳 입니다. 지난번엔 이곳으로 내려서 대혜폭포를 다시 보고 갔었답니다.
지나온 칼다봉과 칼다봉능선의 산자락을 담아보았답니다.
이제부턴 조금은 서둘러 하산을 시작하게 되었지요.오후6시까지는 하산하라고 하였기에, 계곡에서 족욕을 한후 채미정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답니다.
금오산관광호텔 뒤편으로 하산을 완료하여 흐르는 계곡에서 족욕을 마친후 서둘러 채미정으로~~
산행 시작전 구름속에 갇혀 조망이 신통치 않을거라는 염려는 괜한 걱정이었네요.
멋진 지인들과의 금오산 산행에 그런대로 하늘이 열려지는 행운까지 덕분에 금오산의 풍광을 멋지게 즐겼고,
또한 금오산에서 약사암을 바라볼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인 돌탑전망대에서 그림처럼 펼쳐지는 약사암과 주변 풍광들~
행복으로 즐겨 보았답니다.오후 5시30분경 도착하여 오후 6시에 구미를 출발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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